[쟁점플러스]
한•EU FTA, 유통법•상생법 ‘장애물’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원포인트 재협상 통해 국내법 존중 약속 받아내야

 

찬성 163명, 기권 5명, 반대 1명. 지난 5월 4일 밤 10시 50분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가결됐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소속 국회의원 7명이 국회의장석을 점거하며 비준동의안 철회를 강력히 요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한나라당과 미래희망연대만이 표결에 참석한 가운데 지난해 10월 공식 서명된 한•EU FTA가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로써 양측은 7월 1일 잠정발효를 위한 절차를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외교통상부는 비준동의안이 통과된 지 20여분 만에 대변인 명의로 “본회의 통과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통과에 대해 마냥 환영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바로 중소상인, 농민이다. 여•야•정은 이날 한•EU FTA 비준안과 함께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법 개정안, 농가피해소득보전지원안도 처리키로 했다. 하지만 한•EU FTA 비준안만 통과되고 나머지 두 법안은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절차를 모두 마치지 못해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세 법안의 동시처리 계획은 지난 2일 여•야•정의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 정부는 “5월에 비준안을 통과시킨 뒤 7월 1일 잠정발효된 뒤에 SSM 규제법 개정안과 농가피해지원법안을 처리하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세 법안을 동시에 처리하자는 야당 측의 요구를 정부가 수용하면서 이날 합의가 성사됐다.

 

중소상인•농업인 보호 법안 처리 못해

 

여야 합의문에는 중소상인, 농민을 위한 대책이 포함됐다. 최대 쟁점이었던 SSM 규제법과 관련, 여야는 재래시장 입점 제한 범위를 기존의 ‘500m 이내’에서 ‘1㎞ 이내’로 확대하고, 법안의 일몰 시한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키로 했다. 또 한•EU FTA 발효 뒤 중소상인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EU 측과 협상을 해 SSM 관련 내용을 개정키로 했다.

 

농축산물 가격이 하락했을 때 차액의 일부를 현금으로 보상해주는 소득보전직접지불제의 발동 요건도 상향 조정키로 했다. 정부는 FTA 발효 이후 10년간 기준가격의 85% 이하로 물품 가격이 떨어지면 손해액의 90%까지 보전하기로 했다. 현행 소득보전직접지불제의 발동 가격기준(80%)과 보전비율(80%)을 각각 5%, 10% 높인 것이다. 직불제는 비준안 발효 후 10년간 운용하도록 했고, 피해농가에 대한 기금도 5년간 1조원 이상 지원키로 했다.

 

하지만 이 합의안은 민주당 내에서 추인을 받지 못했다. 민주당은 지난 4일 최고위원회의, 의원총회에서 격론 끝에 여•야•정의 합의를 파기하고 표결에 불참키로 결정했다. 때문에 민주당 소속 지식경제위원장과 농림수산식품위원장은 한나라당의 비준안 처리를 반대하며 두 부수법안의 직권상정에 동의하지 않았다.

 

민주당으로선 먼저 여•야•정의 합의를 깬 모양새가 됐기 때문에 향후 정부와 여당에 합의를 지키라고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합의내용 그대로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여당도 비준동의안만이 단독 처리된 데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합의내용 그대로 두 부수법안이 향후 국회에서 통과되면 여러 문제점들이 해소되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먼저 SSM 규제법 개정안은 통과가 돼도 국제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 빛 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하나의 국회에서 모순되고 충돌되는 국내법과 조약을 처리한 경우 조약이 우위를 갖는다”며 “아무리 한국이 법률로써 전통상업보전구역을 1㎞로 확대한다고 하더라도 한•EU FTA에서 그러한 조치를 허용하고 있지 않는 한, 이는 EU에 대해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SSM규제법이 무력화되는 걸 막기 위해선 결국 EU 측과 ‘원포인트 재협상’을 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다행히 여야 합의문 1의 2항에 “중소상인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EU 측과 협상을 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한•EU FTA를 먼저 발효시켜놓고 이후에 개정 협상을 하겠다는 것은 정부의 일방적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민변의 설명이다. 한•EU FTA(제15.5조)에 따르면 한•EU FTA를 개정하려면 EU가 합의를 해 주어야 하며, EU의 리스본 조약에 따라 EU 의회의 동의 및 27개국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EU 측이 SSM과 관련된 한국의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걸로 그만이라는 것이다.

 

선 발효 후 재협상은 정부의 희망사항

 

민변은 “정부가 진정으로 SSM으로부터 중소상인, 골목상권을 보호할 의지가 있다면 한•EU FTA가 발효되기 전에 EU로부터 한국의 유통법과 상생법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상태이기 때문에 EU 측으로서는 원포인트 재협상에 응할 유인이 많이 사라진 셈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재협상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시각을 내비쳤다. 결국 ‘어설픈’ 여•야•정의 합의는 애초부터 중소상인을 실효성 있게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되지 못했던 셈이다.

 

농업 대책에 있어서는 ‘친환경 무상급식에서의 국산 농산물 사용 보장’이라는 핵심 내용이 빠져 있다는 게 민변의 주장이다. 민변은 “현재의 한•EU FTA에서는 장차 서울시, 경기도 등 광역 단위나 구청 단위로 급식 식품을 발주하는 데에 국산 농산물을 우선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며 “따라서 재협상을 해서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는 “EU 측은 협상시 우리의 학교급식 예외조항에 이의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며 “우리의 급식제도에 대해 향후 EU 측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여•야•정의 합의는 유야무야됐고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바뀐 것은 한•EU FTA가 국회에서 통과된 것뿐이다. 중소상인들은 재협상이 이뤄지기만을, 농민들은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민변 송기호 변호사는 “원포인트 재협상을 통해 EU가 유통법, 상생법을 존중하고 이해한다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통상교섭본부는 그동안 통상협정을 견제 없이 독단적으로 체결해왔고 그 폐해는 수백개가 넘는 번역 오류로 나타났다”며 통상절차법이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