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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료원, 세상 향해 진실을 외치다

by 선전국 posted Jul 01, 201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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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진주의료원 조합원 기자간담회 개최, 넉 달간 투쟁 하며 알려지지 않은 속내와 진심 밝히며 눈시울 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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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료원 조합원 간담회 <진주의료원 조합원들의 진솔한 이야기, 세상을 향해 외치다>가 7월 1일(월) 오전 11시 진주의료원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이 날 기자간담회에서 진주의료원지부 조합원들은 지난 넉달간의 투쟁 경과를 보고하는 한편,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가장으로서,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느껴온 소회와 어디에도 밝혀지지 않은 진심을 말하며 눈시울을 밝혔다.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입 말 그대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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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진주의료원 출신은 왕따 당할 수 있어요. 모르셨어요?"

(진주의료원 퇴직 후 다른 병원 면접을 보러 간 조합원의 말을 대신 전합니다)

 

진주의료원을 떠나 재취업을 위해 인근 병원 관리자와 면담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면접관은 대뜸 '진주의료원 출신은 취업이 힘든거 모르냐' '설사 취업 되더라도 차별 둘 수 밖에 없다' '왕따 당할 수도 있다'고 말하셨죠. 바로 눈물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있었어요. 그런데 채용시에는 1년 계약직으로 우선 해 보고 계약 연장 할지는 1년 뒤에 판단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병원에서 계약직은 청소 등 일부에 불과하고 전원 정규직으로 고용하거든요. 그러면서 "월급도 진주의료원보다 적을 것"이라 하시기에 제가 진주의료원에서 받은 급여를 말하자 엄청 놀라시더라고요. "설마, 진짜로?" 라고 몇번 되묻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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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천사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전정화 조합원

 

2009년 세상을 뒤흔들었던 신종플루, 진주의료원이라고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응급실에서 근무했던 저는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신종플루 전염병 관리로 하루 종일 환자들이 진주의료원으로 몰렸습니다. 당시 응급실에서는 임산부가 세 명이나 근무하고 있었지만 인력난으로 모두 무거운 배를 감싸가며 일했습니다.

 

 밥도 제대로 챙겨먹을 수 없어 매일 불어터진 컵라면을 먹었어요. 퇴근 시간이 닥쳐도 환자들이 워낙 많아서 집으로 갈 수가 없어서 항상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퇴근했었죠. 내 선배도 같이 임신중이었는데 몸 사리지 않고 일 하는 모습에 감히 투정도 못부리겠더라고요. 집에 돌아가도 쉽게 잠 들 수 없었죠. 다리가 퉁퉁 부어서 너무 아팠거든요. 그땐 굉장히 서러웠어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우리 아이 괜찮을까.. 임산부를 배려하지 않는 근무환경이 정말 속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종플루 환자와 보호자가 제 손을 잡고 오히려 걱정해주면서 "고생 많으십니다. 선생님은 정말 천사같은 일을 하고 계셔요"라과 격려해줄 때 그간의 스트레스는 온데간데 없이 보람만 남았죠. 생각해보면 제 인생에서 제일 힘든시기였지만 신종플루 환자를 위해 몸 사리지 않고 사명감 하나로 일 했던 때였습니다. 사실 이런 날들, 진주의료원에서 일 해온 13년간 계속 이어져 왔었어요. 제 모든 열정과 애정을 쏟은 직장이 하루아침에 말도안되는 이유로 폐업되니 서럽고 억울한 마음뿐입니다. 홍준표 도지사는 도대체 공공병원 역할을 제대로 알긴 할까요?  진주의료원이 진주시민을 위해 서부 경남 도민을 위해 꼭 필요한 병원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요? 저는 반드시 진주의료원이 재개원되고 정상화되어 다시한번 성실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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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에게 아름다운 사회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 최유영 조합원

 

저는 직장을 잃고 세상을 얻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그동안 그동안 정치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나 자신과 가족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제가 지금까지 투쟁을 하는 이유는 권력자의 힘에 의해 힘없는 우리 환자들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경남도는 휴업 발표 후 환자를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환자 가족과 보호자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견디다 못한 환자들은 한분씩 눈물을 흘리며 떠나야 했습니다. 한 할아버지는 현관문을 나서면서 “정말 소리 없는 총이 있다면 쏘고 싶다”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이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공무원들 독촉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13년 동안 간호사로 일하면서 많은 환자를 보았고 그들의 삶을 보았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비관한 사람들, 자식에게 모든 것을 내 주고 남은 것이라곤 병든 몸뿐인 사람들, 불의의 사고로 인해 전신마비, 식물인간이 된 사람들. 그들 대부분 가난하고 약한 분들이었습니다.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개인 병원에서 밀어냈지만 이 사회는 그들을 돌봐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또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실 노조가 무슨 일을 하는 지도 잘 몰랐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도지사는 강성노조 귀조노조 때문에 폐업은 불가피하다고 했고 모든 언론도 여기에 집중 했었지요. 사람들은 우리를 비난했고 저는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얘기 해도 믿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나 때문에 가족까지도 상처 입는 것, 보고 싶지 않아 투쟁을 그만 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게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환자 실태 조사를 나갔습니다.두려웠습니다. 노조 때문에 병원 망했다는 말 들을까봐 손가락질 받을까 걱정됐어요. 현실을 마주한 순간 그런 두려움은 뒤로 미뤄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쫓겨난 환자들 대부분 진주 외곽의 병원으로 가거나 그마져도 안되는 사람들은 집에서 어떤 치료도 받지 못하고 방치돼있었습니다. 진주의료원 재개원 소식을 들으며 티비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도에서 왔다 가긴 했다던데 무책임한 말뿐이었다고 하셨어요. 병원비 차액분 지원같은공수표나 날리고 환자 건강보다 진주의료원 폐업에만 급급했던 겁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손가락질 받을까, 상처받아 아플까, 나만 생각했던 그 동안의 제가 너무 부끄러워졌어요. 조사 마치고 의료원으로 돌아가는 제 손 잡고 "포기하지 마세요. 꼭 진주의료원 살려서 우리같은 사람들, 좋은 환경에서 편안히 치료받을 수 있게 만들어주세요"라고 하시데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결국 저는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병들어 살아있는 것이 부담인 사회를 홍준표 지사가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집에서 엄마 기다리는 우리 두 아이 얼굴이 아른거렸습니다. 뭐든 더 좋은 것 먹이고, 입히고, 주고 싶은게 부모마음이죠. 저는 우리 애들에게 더 좋은 사회 물려주고 싶습니다. 힘 없고 약해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하나뿐인 제가 지금가지 싸워온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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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도 진주의료원으로 '출근'합니다"

- 박진아 조합원

 

저는 2008년 진주의료원에 입사했습니다. 일 한지 한달 되던 날 설레는 마음으로 통장을 확인했는데, 월급이 안들어와있더라고요. 그때 선배들 말 더듬어 보면 "신축이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렇게 어렵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진주의료원이 이렇게 임금체불이 심했음에도 제가 계속 이곳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에 많은 분들이 놀랍니다.

 

그런데 제게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의미가 진주의료원에 있었습니다. . 일반병원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보호자가 없는 행려환자나 장기입원환자, 생사를 오고가는 호스피스환자, 외국인노동자에서 위험에 노출된 환자 등 그분들을 돈으로 생각하며 치료하는 병원시스템이 아니였기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 겨울무렵 두경부암으로 얼굴이 두배로 커지고 입안에서 지혈이 잘되지 않아 피비린내도 심한환자분이 오셨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확진까지 받으셨으나 치료가망은 없고 보호자도 없고 돈도 없기에 저희병원으로 의뢰되어 오신 것이였습니다. 그 환자분의 소원은 아주 너무나도 작은 것이였습니다. 항암치료를 받고 수술해서 병이 낫고 싶은 게 아니고 통증이 괴로워 밖이 아닌 병원에 있고 싶어 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분은 저희병원과의 좋은인연으로 호스피스병동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수많은 환자들이 갑작스러운 진주의료원 폐업으로 죄인마냥 쫓겨났습니다. 닫혀진 병실을 보면서.. 진주의료원이 아니면 안되는 환자분들..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저도 그분들이 떠날 때처럼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엄마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저희 남아있는 조합원들은 대부분 여성이 많고 어린아이들을 둔 엄마들입니다.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120일이 넘는 이 투쟁은 너무나도 버겁습니다. 한참 손이 많이 갈 시기인 딸을 할머니에게 맡겨두고 날치기를 막아볼려고 노숙으로 도의회를 지키기 바빴고 지금은 진주의료원에서 숙식하며 병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물정도 모르고 집과 직장만 오고가며 일만해오던 우리가 하루아침에 강성.귀족노조가 되어있었고 비리집단, 피혐의자 신분이 되어있었습니다. 나만 아니라 너도나도 다 같이 살아보자고 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습니다.
 
 진주의료원이 정상화가 되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떠났던 환자분들의 마음처럼 저는 다시 이곳에서 일하고 싶고 104년 역사를 잇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 딸에게도 엄마가 “끝까지 했었다”라고 말하며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진주의료원으로 ‘출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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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잃은 예비 사위에게 장인어른 하시는 말씀, 눈물났습니다"

- 김영명 조합원

 

저는 2012년에 진주의료원에 입사했습니다.
제가 병원에 입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청전 벽력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2월 26일 진주의료원 휴 폐업에 관한 내용을 인터넷 기사로 봤습니다. 하지만 경상남도와 병원 측 과 아무런 상의 없이 발표 된 상황이라서 저는 일단 환자를 보면서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누그러 들기는 커녕 상황이 더 악화 되는 모습을 보고 저의 환자는 더욱 불안해 하면서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가야되나?, 퇴원을 해서 집으로 가야되나?” 라며 치료에 집중할 수 없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청 공무원들이 병실로 전화를 하거나 찾아와서 퇴원을 강요하면서 어쩔 수 없이 퇴원을 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상남도에서는 귀족노조 강성노조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제가 전에 다녔던 병원에서 지금보다 금전적으로나 근무조건이 더 좋지 않았지만 공공의료를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진주 의료원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다른 병원보다 근무조건이 더 나빠졌지만 저희가 월급이 더 많은것 처럼 몰아가는 경상남도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잘못 된 점을 바로 잡고 싶었습니다.

 

 저는 올 12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 신랑입니다. 저의 인생에 반쪽이 될 여자 친구도  저와 같이 진주의료원에 근무하는 직장 동료입니다. 하지만 폐업 후 일자리를 잃고 속 앓이를 많이 했습니다.

 결혼 승낙을 받기위해 변변한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집이 부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조건으로 부모님께 결혼 승낙을 받기위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입장이 바뀌어 제가 여자친구 아버지라면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 있는 남자라야 결혼 승낙을 할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여자를 잡지 못한다면 평생 후회 할 것 같아 용기내어 부모님을 찾아 뵈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인사 드릴때는 부모님께 결혼에 대한 말씀을 드릴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몇 번 부모님을 찾아뵈면서 용기 내어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의 말을 듣고 여자 친구 부모님은 오히려 담담하게 저의 상황을 이해해주시면서 용기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공공의료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믿음이 간다, 딸을 잘 지켜 줄 수있을꺼 같다.”라고  말씀을 해주셔서 저는 꼭 진주 의료원을 지켜야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그동안 많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받아오던 월급도 폐업을 함으로써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저축해왔던 돈 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직장도 없어 신혼부부 대출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예비신부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더는 아니더라도 비슷하게는 해주고 싶고 예비 사위로써 예비 장인 장모님께 작게나마 용돈도 드리고 싶은 저의 마음입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갈까 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저의 예비신부가 “부족하면 어떠냐 지금은 어렵지만 진주의료원을 지켜내고 공공의료를 지켜낸 후 당당하게 직장으로 돌아가서 행복한 신부로 만들어 달라”고 얘기를 하여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정상화가 된다고 해도 저의 월급으로는 한달 살아가는데도 빠듯합니다. 그래도 정상운영되는 병원에서 월급 받으며 신혼의 꿈을 이어가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상남도에서는 언론을 통해 강성노조 귀족노조라는 말로 경상남도 도민뿐 아닌 오천만 대한민국 국민을 우롱하는 일은 그만하고 홍준표 도지사는 국정조사에 성실히 임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국정조사를 통해 꼭 진주의료원의 진실이 밝혀지고 정상화 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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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내 딸은 착하고 성실한 간호사였는데..”

오진영 조합원

 

 "내 딸은 착하고 성실한 간호사였는데.. 지금은 빨갱이 소리 들으며 취직도 못하고 시집도 못갈 것 같아 걱정입니다. TV를 봐도, 주변사람들 애기를 들어봐도 안좋은 소리뿐인데.. 딸은 병원에서 세뇌를 당하는지 아무리 말려도 듣지않고 노조활동한다고 집을 나섭니다."


 진주의료원 폐업철회를 위해 열심히 투쟁했던 후배가 부모님의 심한 반대로 울면서 집을 나왔습니다.

 저 또한 진주의료원 폐업발표 이후 괜히 가족들에게 짜증내고 상처줄 것 같아 집에서 이런저런 애기를 하지 않고 집에 있는 시간조차 줄였더니.. 답답해하셨던 저의 부모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에 진주의료원이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다른데 취업하기는 힘들텐데.. 노조활동을 계속해야겠느냐?"

 도대체 저희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빨갱이소리 듣고 재취업을 걱정할 정도로 사회적 고립을 받아야 합니까? 왜 저의 가족들이 TV에서 홍준표가 떠드는 왜곡된 진실을 듣고 주변사람들에게 안좋은 소리를 들으며 딸의 앞날을 불안해하고 걱정해야합니까?너무 서글프고 억울합니다.

 

 월급이 7개월 체불되고 연차수당도 반납하면서도 묵묵히 일했던 저희는 신축이전한 지 5년밖에 안된 진주의료원을 일방적으로 폐업시키는 홍준표의 만행을 알리고 나의 일터를 지키고자 나섰습니다. 그리고 의료원의 문제점, 공공의료시스템을 바로잡아서 전국의 지방의료원이 만성적자라는 오명을 벗고 국민들에게 건강한 적자로 공공의료 혜택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있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에 무관심했고 노조활동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던 저는 이번 투쟁을 통해 세상을 조금은 넓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옳은 일에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하는 저의 작은 변화가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진주의료원을 지키기 위해 거리선전전을 나섰지만 정작 제 가족들을 이해시키지 못했습니다. 이런 저를 반성하고 늦었지만 걱정하시는 부모님과의 소통을 위해 대화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퉁퉁부은 눈으로 집을 나왔던 후배도 선배들의 만류로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내편, 내 가족들의 지지 속에서 힘겹게 투쟁하시는 여러 선배, 후배를 바라보며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며, 가족에게 힘을 얻어 이 투쟁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저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진주의료원이 꼭 정상화되어 저희의 투쟁이 빛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여기서 투쟁 안한다? 그럼 모든걸 인정하는 셈이죠"

-김홍제 조합원

저는 진주의료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해온 40대 가장입니다. 제 한 달 월급이 170만원입니다. 얼마전에 퇴직금을 받았는데 1700만원 통장에 찍혀있더라고요. 뉴스 보니까 4인 가족 최소 필요한 생활비가 280만원인가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워낙 적은 임금이라 그만두려고 지난 10년 동안 세 번 정도 고민했어요. 10년 근무한 댓가로 제게 남은건 마이너스 통장 3개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이든 처가든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려고 하느냐'고 말리시더라고요. 어른들 반대를 거부할 수가 없어서 고민하면서도 여기까지 온거죠. 그런데 갑자기 직장이 문을 닫고 저는 졸지에 귀족노조, 강성노조가 됐지요. 투쟁 하면서도 수없이 고민했지만 우리 집사람이 이런말을 하더라고요. "당신 여기서 그만두면 사람들이 말하는 강성노조 때문에 망했다는거 인정하는거야. 당신 자존심 상해서 살 수 있겠어?"라고... 생각해보니 그래요. 끝까지 싸웠다. 돌아봤을 때 난 비겁하지 않았다. 도망가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다는 기억이 남는게 저한테 더 좋을것 같더라고요.  우리 진심, 우리 진실, 그리고 나와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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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 이후 조합원들은 스케치북 메시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기자들은 진주의료원 내 호스피스 병동, 노인요양병동, 장애인 전문치과 등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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