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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파업 21일차! 을지재단은 파업장기화, 노사관계 파탄이 아닌 성실교섭으로 응답하라

by 선전국장 posted Oct 30, 201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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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일 시작된 대전 을지대병원지부, 서울 을지대을지병원지부 전면파업이 21일차를 맞이했다.

을지재단은 4차례 진행된 사후조정회의에서 여전히 진정성 있는 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을지재단은 파업장기화, 노사관계 파탄이 아닌 성실교섭으로 파업사태 해결에 즉각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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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을지대병원지부 파업 21일차 출정식에서 정해선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 위)@보건의료노조 대전충남지역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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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 서울 을지대을지병원지부 파업 21일차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방기원 보건의료노조 교육위원장(사진 바로 위)@보건의료노조



<  대의원의 글>


안녕하십니까 저는 을지대 병원에 근무하는 16년차 간호사입니다.

2004년 둔산동에 중부권 최대의 규모, 최상의 의료를 자랑하는 을지대학병원에 경력직으로 입사하면서 나이팅게일의 꿈을 키워나가고자 다짐하였습니다

중환자실에 배치받아 열심히 정성껏 환자를 돌보았고 많은 케이스의 환자들을 접하면서 전문의료와 간호의 지식도 쌓아갔습니다. 10년 근속상, 친절직원상까지 받았을 정도로 열심히 근무하였습니다. 동료, 선후배들과도 앞으로의 10년뒤를 그리며 즐겁게 일을 하였고 환자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며 내 일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병원은 나날이 발전하였고 그런 모습을 보는 내내 나의 피땀이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가까이오고 있는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도 잠시 2006년 겨울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구르며 허리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4주간을 꼼짝없이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으며 제 자리를 누군가가 대신하여야 한다는 미안함에 4주간의 병가도 마음껏 쉴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라고 다치고 싶어서 그랬겠습니까? 윗분들에게서 들려오는 소리는 도대체 어떻게 몸관리를 하길래 뼈가 부러져서 남에게 피해를 주냐. 니가 없어서 동료들이 몇배나 힘들다였습니다. 몸도 아픈데 마음도 만신창이 였습니다. 병가후 근무지에 복귀했을때는 허리에 보조기를 차고 환자들의 체위변경을 해야만 했습니다.


내몸이 아프니 환자들의 아픔을 돌볼수 없음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얼마간의 휴식이 더 필요하여 수선생님께 휴직을 요청하였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사직해라 그리고 다시 들어오면 받아주겠다` 였습니다. 2006년에 병원은 간호등급제를 맞추기 위해 모든간호사는 정규직으로 채용해야하는 외부강압이 있기전까지 저는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가 막힌 대답에 아픈몸으로 묵묵히 제자리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규직이어도 나의 상황을 알아달라고 소리낼 수 없는데 비정규직은 더더욱 침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 상황은 16년이 지난 지금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이후 2011년 타부서로 발령을 통보받았고 그때 저는 결혼 4년차였음에도 아이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선생님은 저에게 이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타부서로 가서 완벽히 업무에 적응할때까지 1년동안 아이를 갖지 말아라. 저는 알겠다고 대답하였으나 그해 10월 아이가 생겼습니다. 임신은 세상 그 어느 누구라도 축복받아야 할 일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부서이동 후 6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임신하였다고 수선생님께 축복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곳은 검사파트 상근직이었으나 일주일씩 당직을 하며 응급콜이 있으면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임신했다하여 저에게 예외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총무과에서 저를 부르더군요. 임신하였으나 밤근무를 지속할 것을 스스로 동의하는 동의서에 서면을 하라고 했습니다. 토요일, 일요일, 명절, 새벽 2,3...... 병원이 부르면 달려나와야 했습니다. 출산 50일전까지 당직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아이를 출산하고 90일동안의 분만휴가를 마치고 육아휴직이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한체로 업무에 복귀하였습니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생후 80일 된 핏덩이를 생판 모르는 남에게,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터로 나와야만 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시는 엄마들은 모두 공감하실껍니다.

이후 다시 중환자실로 근무지를 옮겼고 일하는 중에 둘째아이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둘째를 갖고 싶어 오프날은 시체처럼 잠도자자 보고 의학의 힘을 빌어할 수 있는건 다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번번히 실패하여 실망하는 중에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몇몇 후배들의 한마디 였습니다. “선생님, 저 임신했어요. 그런데, 임신했다고 파트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선생님한테 먼저 허락 받았냐고 하시더라구요. 선생님보다 제가 먼저 임신해서 죄송해요,”

저는 이미 후배들에게 임신순번제를 묵언으로 종용하는 선배가되어있었습니다

제 의도는 1%도 반영되지 않은 채 오로지 윗분들이 저를 그런 선배로 만들었 더군요.

한번은 후배와 선배가 같은기간에 임신한 적이 있었습니다.


타병원은 임신하면 밤 근무를 제외시켜 주는거 아시죠? 하지만 저도 당직에서 예외 되지 못했듯이 후배도 밤 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선배는 예외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선배는 그 해 7월 주임간호사로 승진할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체 누가 누구의 승진을 결정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승진을 하는 건지도 불분명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승진 예정자라고 이런 특혜까지 주는 건 부당하지 않습니까?

결국 후배는 쌍둥이를 출산하고 복귀 2개월 만에 퇴사해 버렸습니다.

가끔 후배와 연락을 하면 그때 일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선생님 제가 눈치 없이 선배님 임신 할 때 저도 임신했네요. 제가 잘 못했죠 뭐..”

대체 누가 누구에게 잘못했다고 해야 하고 뭐가 잘 못 이란 말입니까? 분통터지고 가슴이 먹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환자실과 병동, 그리고 수많은 파트에, 병원 어느 부서에도 간호사들은 있습니다. 나이팅게일들이라고 여겨지는 그들이 한결같이 외치는 목소리는 화장실좀 가자, 밥좀 먹고 일하자입니다.

정말 이런 창피한 원시적인 바램을 소원이라고 적어내는 집단이, 병원이 또 있을까요?

앞서도 제 경험에서 말씀드렸듯이 내 몸이 아프면 남을 돌볼 여력이 없습니다. 내가 아프면 동료들의 눈치를 봐야합니다. 내 자리를 대신할 누군가를 채워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내가 밥먹을 시간에 내가 화장실 갈 시간에 내 자리를 대신할 누군가를 채워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 모든 사례가 인력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까? . 인력이 충분히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슬픈현실에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인력충원은 반드시 쟁취해야할 우리의 숙제입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타인의 불행이 아픔이 보이지 않습니다. 간호사들은 대부분 나이팅게일의 정신으로 병원에 취직하여 일을 시작하지만 어느새 일에 치이고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이팅게일의 정신은 잊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간호사도 사람인지라 자신의 노력을 보상받고 인정받는다면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전의 동급 k병원에 근무하는 6년 아래 후배가 있었습니다.

제 듀티표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오프가 7개에요?? 나이트도 6?? ~~ 선생님 월급 많이 받으시겠네요. 선생님은 저보다 6년 선배이니 그만큼 더 받으실텐데, 저는 오프가 10개고 나이트도 한달에 5개 정도 하는데

그래서 월급을 비교해봤습니다. 그런데...... 후배의 원급명세서의 숫자가 저의 월급명세서의 숫자보다 많았습니다. 저보다 6년이나 후배고 오프도 3개나 많고 나이트도 적게 하는데...

내 청춘 다바쳐 일한 대가가 고작 이거라니 자괴감마져 들었습니다.

이게 바로 을지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살았던 직장이었습니다.

행복은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것이라 하죠?. 인생을 살아가면서 돈보다 더 갚진 것이 있다고 하죠. 물론 월급명세서의 숫자도 절대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존중받고 나의 노동이 존중받는 다면 응당, 그에 맞는 적절한 보수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7살이 된 제 아들이 유치원에 가면 언제나 제 자랑을 한다고 유치원선생님이 이야기 해주시더군요. “우리 엄마는 을지대학병원 간호사선생님이야 아픈사람 돌봐주는 사람이야. 너희들도 아프면 을지병원으로 가, 우리엄마처럼 훌륭한 간호사, 의사 선생님들 많아. 우리엄마는 메르스때도 병원에서 아픈사람 돌보느라 14일동안이나 집에도 못왔어. 그래서 텔레비전도 나오고 상도 받았다이렇게 말입니다.

저는 16년동안 떠나고 싶은 날도 많았으나 지금 이 곳에 서있습니다. 뒤돌아보니 을지는 나의 청춘, 나의 반평생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이곳을 바꾸고 싶습니다.

제 아들이 을지의 현실을 알기전에 제 스스로도 정말로 자랑스러운 을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당당하게 입사하라고 권하는 병원을 말들고 싶습니다.

이제는 떠나는 병원이 아닌 환자도 직원도 모두가 오고 싶어하는 병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 이며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응원하고 지지해 주십시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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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 병원장님께 드리는 글]

 

병원장님께

을지병원에 입사한지 12년째입니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 임금수준이며 복지, 근무환경은 여전히 변함없고…….참다 참다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직원의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병들어가는 직원들은 돌보지 않고, 을지가족이라더니 가족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같이 근무했던 선후배동료들을 떠나보내면서 안타까웠던 마음을 아십니까?

이직하겠다는 동료들을 저희는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을지병원 직원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있는 을지는 이제 변해야 합니다.

생명을 다루는 간호사로서 작은 실수는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은 한 사람 만의 잘못이 아닐 것입니다. 의료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간호사 한명이 그만두면 신규로 채워주시지요?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일을 하게 되고 높은 노동강도에 버티지 못하고 나가고……. 다시 이런 일이 반복 됩니다.

경력직이 이렇게 낮은 병원이 있을까요? 병원장님은 신규 간호사에게 간호 받으시겠습니까?

환자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가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돌보지 않고 환자에게 친절해라.

물품 아껴라. 교육하면 바뀌겠습니까? 직원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환자들도 웃을 수 있습니다.

을지병원에서 태어나서 부푼 마음으로 입사했던 신규간호사가 한 달 만에 퇴사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직원도 사랑하지 않는 병원이 인간사랑, 환자사랑 가능할까요? 이제는 직원들의 말에 귀기울여 주세요!! 저희도 환자들 곁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파업을 끝낼 수 있는 대화의 길로 나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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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조합원 발언]


사람들은 숫자 7럭키세븐이라 부릅니다. 파업 7일째 오늘은 저희에게 럭키한 일이 생길까요? 저는 201641일자로 재활치료실 물리치료사로 입사해 어느덧 입사한지 17개월이 지났습니다.

우리 부서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전환이 단 한명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처음 을지대학교병원에 입사했을 때, 첫직장이라는 설렘과 잘해야겠다는 부담을 갖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을지가족이라는 사명감을 안고 환자에게 친절하고 환자를 위해 열심히 치료하면 그 노력을 병원 역시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입사 이후 지금까지 정규직 전환이라는 문턱에서 좌절하는 7명의 선생님들을 봤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치료실 환경, 임금과 복지가 열악하며 1개월 미만으로 일하고 제 발로 나가는 선생님들도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정말 열심히 하는 선생님, 함께 일하고 싶은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


제 일이 아니라고 슬프지 않았을까요?” 그들의 좌절이 곧 저의 미래라는 불안감은 커져만 갔습니다. “과연 나에게 정규직이라는 기회가 오긴 할까?”, “열심히 한다고 과연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이었을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항상 환자분들에게 웃으면서 치료하던 제가 어느 날부턴가 웃음을 잃게 되었습니다.“선생님은 항상 웃어서 좋다”, “친절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더 힘이 나서 치료를 하곤 했습니다. 그 말이 듣고 싶어 더 열심히 했었습니다. 하지만 떠나가는 선생님들을 보며 주인의식, 치료의 책임감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크게 자리 잡았습니다.


불안감을 숨기려해도 환자들이 더 먼저 눈치를 챕니다. 장기외래환자들은 매번 2년까지 몇 개월 남았는지 더 많이 물어봅니다. 저를 응원해 주면서도 또 치료사가 바뀐다며 걱정을 합니다. 언제까지 치료사와 환자가 불안해하는 병원으로 남아야할까요?

저희 재활치료실은 현재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율이 5050입니다. 정규직전환이 단 한명도 없던 6년이라는 시간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격차를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10년 이상의 선생님들과 3년 미만의 선생님들의 격차는 치료적으로 체감하자면 엄청납니다. 앞으로 정규직 전환이 계속 없다면 그 격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질 것입니다. “중간연차를 고용하면되지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 그 중간연차 선생님들이 1개월 미만으로 일하고 나간 선생님들입니다. 그 선생님들은 왜 제 발로 퇴사 했을까요? 6년 동안 단 한명이라도, 딱 한명이라도 정규직전환이 된 사람이 있었다면 그 선생님들이 나갔을까요? 계약직들에게 불안감만 남았을까요?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라도 품었을 겁니다. 하지만 병원은 정규직이 퇴사해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 시켜주지 않고 희망고문만 시키고 있습니다.


어떤 꿈도 희망도 품지 못하는 계약직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왜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의 문 앞에서 비를 맞고 있어야 할까요.

촛불의 힘으로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이 대규모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을지대학교병원도 그 흐름에 맞게 정규직전환이 이뤄져야합니다.

비정규직 문제 꼭 해결해야합니다. 언제까지 마음속에 비를 맞고 있어야할까요. 이제 그 비를 그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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