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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속보] 위원장 옥중 서신

by 선전국 posted Oct 30, 200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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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수련 위원장님이 3만9천 조합원에게 드리는 옥중 메시지


사랑하는 동지 여러분!
쇠창살 사이로 눈부신 푸른 하늘과 흰구름이 0.9평 남짓한 독방으로 기웃거립니다.
독방을 벗어나 땅을 밟고 하늘을 마음껏 쳐다볼 수 있는 짧은 30분 동안의 운동시간에 가을의 상큼함을 마시려 힘껏 심호흡을 하면서 땀을 흘리려 뜀박질을 합니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세계화에 농민들의 근심은 깊어가고, 노동자들에겐 또다시 세찬 구조조정 바람이 밀어닥치고 있어도 들판은 지금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고, 길가엔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으리라 생각하며 그 정경들을 머리속에 담아봅니다.
넉넉함과 푸근함으로 겨울을 맞이해야 할 가을입니다.

그렇지만 이땅의 현실들이 우리로 하여금 계절을 호흡하고 앞날에 대한 희망으로 꿈을 키우며 하루하루를 맞이할 만한 여유를 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쇠창살에 갖힌 지 벌써 한달이 다 되어갑니다.
제가 출두할 때까지도 힘겹게 파업투쟁을 계속하던 동광주병원, 대전대한방병원의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진해 현대의원, 원주 인화병원의 폐업철회투쟁도 아직껏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동지들이 너무나 힘겹게 싸우고 있는데 위원장으로서 함께 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동지들에게 더 무거운 짐만 떠넘긴 것 같아 송구스럽기도 하고 마음이 참 편치가 않습니다.

저는 이전부터 한양대의료원 간부들에게 종종 했던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병원의 엄청난 노조탄압으로 고통받으며 눈물흘리며 싸웠던 그 때를 절대 잊어버리면 안된다. 기쁜 곳엔 빠질 수 있어도 어려운 동지들이 있는 곳은 절대 빠지지 말고 뛰어다녀야 한다."

이 말을 이제 3만9천 우리 병원동지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올해 투쟁에서 모두들 다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아니 지금까지 병원노조들 전체를 놓고 볼 때 우리 병원노동자들은 그나마 원만하게 어렵지 않게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87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가면 녹십자병원, 고려남훈병원, 제주 세한병원 등이 병원사용자들의 악랄한 탄압과 위장폐업으로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치루며 싸우다 결국 길거리로 내몰렸고, 동산병원, 파티마병원, 대전성모병원의 우리 동지들이 아직도 그 어려운 조건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계속 투쟁하고 있습니다.

한 노동조합의 고통은, 한 노동자의 고통과 아픔은 바로 우리 모두의, 전체의 아픔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 힘들게 하루하루를 싸우고 있는 우리 동지들, 동광주병원, 대전대한방병원, 진해 현대의원, 원주 인화병원... 우리가 할 수 있는 차선이 아닌 최선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함께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노력해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럴 때 내일 우리가 당할 고통을 막아내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산별노조를 만들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끼리는 이제 '연대'란 말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병원노동자끼리는 연대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하는 '단결의 의무'입니다. 우리 지부의 웬만한 일들이 있더라도 일의 경중과 선후를 따져보아 해야만 할 일일 때는 지부의 일을 제쳐두고라도 다급한데, 어려운데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했던 동료들이 한명씩 둘식 옆자리를 비우고 농성장을 떠나가는 동지들에 대해 불안함과 한편 배신감으로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투쟁사업장 동지들을 생각하면서 여러분 힘껏 함께 싸워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저는 동지 여러분들의 염려와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잘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5.31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가장 선도적이고 모범적으로 투쟁을 선도했던 병원노동자들의 자랑스러운 투쟁이 있기에 제 자신의 구속은 힘들지 않습니다. 또한 5.31 1차 총파업에 힘입어 해초 파업까지 상정하지 않았던 많은 지부에서조차 6월, 7월 2차, 3차 총파업투쟁으로 이어가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의료개혁을 이루어낸 영웅적인 투쟁을 벌인 사람들이 바로 우리 병원노동자들이었기에, 바로 조합원 여러분들이 너무나 당차고 빛나기에 저는 오히려 더욱 더 당당합니다.


동지 여러분!
투쟁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조직의 확대와 강화입니다.
이번 2000년 상반기 투쟁을 통해 5,200여명의 조합원수가 늘어났습니다. 이것은 바로 현장의 간부들과 조합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했나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동지 여러분!
동지들의 올해 투쟁은 너무나 빛나는 투쟁으로 성과매김되고 있습니다만 그 평가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단단한 지렛대로서 끝냅시다.
올해 2만명 가까이 파업에 돌입하고 조합원의 2/3가 조정신청을 낼 수 있었던 이것을 앞으로 우리도 산별노조로서 산별노조답게 보다 더 힘있는 투쟁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앞으로의 '희망'을 여는 밑거름으로 삼읍시다.
우리는 지금 올해 투쟁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의사집단의 장기파업으로 현장은 무척 어렵습니다.
내년에 벼원현장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경제도 어렵다고 들쑥거립니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세계화가 우리 노동자, 농민의 목줄을 조여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위험과 어려움을 예견하고 지혜롭게 준비하는 자에게는 그 고통은 시련이 아니라 도약을 위한 하나의 '단련'이 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노동자로 닥쳐올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하루를 준비해나가도록 합시다.

노동조합의 힘은 현장노동자로부터 나옵니다.
간부들은 몸 아끼지 말고 현장을 돌며 현장 동지들과 함께 힘을 모으도록 하고 조합원 동지들은 아웃사이더 또는 방관자로서 머물지 말고 노조의 주체로서 적그 나설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읍시다.


저는 작년 11월 이후 하루도 숨한번 돌리지 못하고 앞만 보며 허겁지겁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중요한 많은 것들을 놓치기도 한 것 같기도 합니다.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에 걸친 명동성당 천막농성을 하는 동안 정신적·육체적으로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위원장이 손발이 묶여 현장을 뛰지 못한 관계로 특히나 수석부위원장님의 어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으리라 생각됩니다.)
의사파업과 금융노조 파업 처리 결과를 두고 볼 때 보건의료노조 파업에 대한 검찰과 정부의 태도는 저를 비롯해 많은 동지들을 분노케 합니다. 하지만 그 분노를 새로운 '단련'으로 만들어가겠습니다.
너무 많이 지쳐있던 저에게 이번의 4번째 구속은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정말 소중한 기회라로 생각합니다.
나혼자만의 좁은 공간에서 하루하루 한순간순간을 소홀히 보내지 않고 좋은 과정이 되도록 하기 위해 몇가지 원칙을 만들어 충실한 하루하루를 엮어나가고 있습니다.
질서있는 생활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고, 독서와 사색을 통해 감옥살이가 썩는 것도 아니고 쉬고가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단련의 장, 훈련의 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동지 여러분!
비로 한평도 안되는 독방이지만 날씨는 쌀쌀해 추위가 슬금슬금 들이밀고 있지만 제가 있는 이 좁은 공간은 3만9천 조합원 동지들이 함께 하고 있고, 저는 동지들의 사랑과 배려를 함께 느끼고 호흡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로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권력자와 자본가들이 갖지 못한 우리만의 소중하고 빛나는 무엇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동지애' 말입니다.

동지 여러분 사랑합니다.
서로를 믿고 아끼며 힘차게 투쟁합시다.

2000년 10월 23일 가을을 호흡하며
위원장 차 수 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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