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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가 이주호의 독일 노동 유학기 5] 노사관계 안정과 경제민주화 초석은 노동기본권 보장

by 선전국장 posted Jan 22, 201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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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가 이주호의 독일 노동 유학기 5] 노사관계 안정과 경제민주화 초석은 노동기본권 보장

이주호  |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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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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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이 학업을 마치고 1년 만에 귀국했다. 이주호 단장은 국제노동기구(ILO)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ES)·독일노총(DGB)의 후원으로 독일 카셀대학(Kassel)·베를린 경제법학대학(HWR Berlin)에서 '노동정책과 세계화'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박근혜 정부는 독일 경제모델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노동시장 개혁의 바이블로 보는 경향도 나타난다. 과연 그럴까. <매일노동뉴스>가 이주호 단장의 독일 유학기를 연재한다. 이 단장은 연재를 관통하는 제목을 '노동존중 복지국가와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라고 썼다. 매주 목요일자에 11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아마존노조 파업집회 장면, 조끼를 입은 조합원 옆에 통합서비스노조 깃발이 보인다. 이주호
  
▲ 통합서비스노조 소속인 베를린 샤리티병원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장면. 이주호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독일에 있는 동안 노조의 파업현장을 직접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21세기 세계 최대 인터넷 쇼핑몰인 아마존 독일지사의 물류창고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있는 바트 헤르스펠트를 학교 동료들과 함께 찾았다. 노조는 독일에서 영업하는 미국기업 아마존이 노동자들을 마치 로봇처럼 취급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무시하며 단체협약 체결을 거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마존 파업은 2013년 5월 시작했으나 해결되지 않고 2015년에도 라이프치히 등 6개 지역과 본사가 있는 미국 시애틀 등 해외에서 지속되고 있다. 단협 체결을 요구하는 청원운동에는 3만8천392명이 동참했다. 아마존닷컴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는 지난해 5월 베를린에서 열린 제3차 국제노총(ITUC) 총회에서 세계 최악의 CEO로 선정되기도 했다.

독일 파업 현장은 독일노총과 지역본부·통합서비스노조·진보정당 등 친노조 단체에서 여러 사람들이 나와 선동적으로 연대사를 하는 모습, 기타 치는 민중가수가 초청공연을 하는 모습, 단체조끼 입은 노조 간부들의 투쟁적인 모습이 한국과 비슷했다. 연대사를 하고 바로 자리를 뜬 사민당 간부와는 달리 좌파당 소속 간부가 끝까지 남아 파업을 지지하는 문구가 붙은 계란을 조합원에게 하나하나 나눠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과 다른 점은 대회 현수막이 화려하지 않고 직접 글로 쓴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연대사가 길지 않았고, 기세를 올리기 위해 함성과 함께 호루라기를 불렀다. 당시 파업 참가자가 200여명이었는데 조합원 중 청각장애 조합원이 있는 듯 수화통역 전문가가 연설자 옆에 앉아 통역해 주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단 한 명의 청각장애 조합원을 위해 수화통역을 하는 것이다. 집회장 뒤쪽에는 조합원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는데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보니 참석 서명을 하면 통합서비스노조에서 하루 50~60유로(7만원)의 파업기금을 준다고 했다.

최근 독일에서 파업이 늘어나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파업손실일수가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원인은 노사가 상호 존중하에 협약을 체결하는 산별 노사관계와 중앙집중화된 산별협약, 현장에서 사전에 대화를 통해 갈등을 예방하는 종업원평의회의 역할을 꼽고 있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2005년부터 2012년까지 1천명당 연평균 파업손실일수가 16일이다. 참고로 프랑스는 150일, 덴마크는 106일, 영국은 26일, 스웨덴은 5일, 스위스는 1일이다.

독일 파업 관련 사항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통합서비스노조에서 발행한 파업 소개 소책자(팸플릿)를 살펴봤다. 팸플릿에 따르면 파업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이자 수단이다. 노동자들은 조합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파업에 참여할 수 있다. 사용자는 그것을 방해할 수 없고, 파업 참여로 인한 불이익은 효력이 없다.

연대파업은 독일연방 노동법에 따라 허락된다. 이는 노동관계 기본법에 명시돼 있다. 아우스추빌덴데(직업훈련생)도 파업이나 연대파업에 참여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동맹파업을 한다고 사용자가 생산지를 이동하면 그 지역에서도 연대파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독일에서 파견직은 파업 파괴자가 아니다. 근로파견법에 따르면 파견직은 노동자 투쟁에 직접적으로 관계돼 있을 때 파견업체에서 근무할 의무가 없다. 합법적인 노동투쟁의 경우 파견회사는 직원에게 근무를 거부할 권리를 가르쳐 줘야 한다.

파업참여를 이유로 한 야근지시는 불법이고 효력이 없다. 노동투쟁에서 회사는 소위 ‘비상근무’를 일방적으로 짤 수 없다. 미리 합의되고 미리 짜인 복종선언(강제로 근무하라는 것)도 무효다. 비상근무 합의는 오직 통합서비스노조 파업 지도부와 할 수 있다. 파업 참여를 이유로 한 징계는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통합서비스노조는 조합원들에게만 파업기간 동안 파업수당을 지불한다. 파업수당은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제공하는 주요 혜택 중 하나다. 비조합원은 받지 못한다. 베르디 조합원은 파업 첫째 날부터 4시간 혹은 그 이상의 업무중단을 요청받는데 이에 대한 파업보조금을 받는다. 이는 직장폐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통합서비스노조가 지원을 확정하면, 규정에 따른 금액이 지급된다. 새로운 조합원도 파업 직전 조합비를 냈으면 파업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지원금 계산은 일반적으로 파업이 시작되기 전 3개월 임금 평균과 실질적인 업무중지 기간에 따른다. 홈페이지(streikgeldrechner.verdi.de)에서 예상되는 파업수당을 계산할 수 있다. 예컨대 하루 8시간을 노동하는 노동자가 파업에 참여하면 하루에 월 조합비의 2.5배를 파업수당으로 받는다.

독일 사회법전 5권에 따르면 합법적인 파업에 참여한 보험납부자들은 파업이 끝날 때까지 보험금 납부를 하지 않아도 되고 시간적인 제한도 없다. 파업 중에 사용자는 직장폐쇄를 할 수 있다. 50%의 노동자가 파업에 동참하고 나면 직장폐쇄는 허용되지 않는다. 25%나 그 이하의 노동자가 파업에 참여하면 직장폐쇄의 범위는 25%로 제한된다.

통합서비스노조는 경고파업의 힘과 정당성, 영향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1970년대 이후 전면파업보다는 단기적 업무 중단을 통해 사측에게 노동자들의 힘을 보여 주는 경고파업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방문한 샤르티병원도 교섭기간에 경고파업을 비롯한 투쟁을 고민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파업권 보장과 더불어 파업을 바라보는 언론과 시민들의 태도도 한국과 많은 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10월 베를린에서 버스 파업이 있었는데 평소 20분이던 배차간격이 1시간으로 벌어졌다. 정류장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나도 그날 중요한 약속에 늦을까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1시간 넘어 버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불평하거나 항의하는 사람 한 명 없이 조용히 버스를 타는 모습에 내심 놀랐다. 궁금해서 이전에 살던 카셀 지역에 트램(전철) 파업을 보도한 언론기사를 찾아보니 노조 파업으로 대중교통 운행이 늦어진다면서 대체교통수단을 안내할 뿐 그 어디에도 ‘시민불편’ 운운하는 비난기사를 볼 수가 없었다.

독일에서 노조활동과 파업권에 대해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존중하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독일 사회는 노동관계 기본법 등 30여개(!)의 노동관계법이 노동자들의 집단적·개별적·절차적 권리를 촘촘히 보장하고 있다. 기업의 주요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사가 함께 결정하는 공동결정제도, 노동자들의 해고를 엄격히 규제하는 해고제한법, 그리고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실직이 되더라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게 하는 각종 사회복지제도가 있기에 한국 같은 격렬한 파업이나 노사 간 죽기 살기식 극단적 갈등이 거의 없는 듯했다.

한국은 지금도 해고자 복직을 외치며 공장 굴뚝 위에 노동자가 올라가 있다.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 가압류를 하고 필수유지업무제도로 파업을 봉쇄하는 한, 노조를 직장과 사회의 불안세력(?)으로 바라보고 노동기본권 보장을 자본의 권리침해와 정권안보의 위협요인으로 보는 한 한국은 노사관계 안정은 물론 노동존중 복지국가로의 진입이 요원하다.

독일 사회 바탕에 깔려 있는 노동권에 대한 제도적·철학적 차이점에 주목하지 않고, 밖으로 보이는 경제위기 극복이나 노사정 대타협과 여야 대연정을 통한 노사관계 안정·정치안정만 부러워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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