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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환자에게 교통비 주는 나라를 상상하라

by 보건의료노조 posted Oct 22, 200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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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비 걱정없는 우리나라 가능한가
[대선 정책제언 : 의료-교육 ②] 병원이 환자에게 교통비 주는 나라를 상상하라
윤태호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마이뉴스>는 25개 보건의료단체의 연대체인 '의료 연대회의'와 24개 교육복지단체의 연대체인 '교육복지실현국민운동본부'와 공동으로 대선 기획을 진행합니다. <오마이뉴스>는 '교육-의료 2007 희망만들기'란 제목의 이번 기획을 통해 대선에서 꼭 다뤄져야할 교육-의료 분야의 핵심 의제를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윤태호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글을 전재합니다. <편집자주>



얼마 전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시코(Sicko, 환자)를 보았다. 이 영화에서는 의료보험이 없는 4800만 명의 미국 국민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는 많은 미국인들이 제대로 된 의료보험의 혜택을 보고 있지 않다는 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 의료보장이 잘 갖추어져 있는 캐나다, 영국, 프랑스, 쿠바의 국민들이 미국인들에 비해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를 대조적으로 그려냈다.



그 중에서 영국의 의료비가 무료라는 말을 믿지 못한 마이클 무어 감독이 실제 한 영국병원을 샅샅이 뒤져서 현금 창구를 발견한 후 쾌재를 부르는데, 알고 보니 의료비를 받는 곳이 아니라, 퇴원한 환자들에게 교통비를 지급하는 창구였다는 것을 알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장면이 있다.



병원에 돈을 내는게 아니라 받아가는 나라



과연 상상이 되는가? 병원에서 환자가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병원으로부터 돈을 받아간다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환자가 병원비 때문에 의사나 원무과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은 이미 일상적인 일이 아니었던가!



‘병원비 걱정 없는 사회’ 과연 가능한가? 우리가 유럽의 복지국가들로 여기는 영국, 독일, 스웨덴의 실태를 살펴보면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영국은 중앙집권적 방식의 국영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로, 조세가 주된 재원이다. 영국은 병의원에서 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 본인부담금은 거의 없다.



의원은 무료이고 병원은 고급 병상을 이용할 때에만 본인부담이 있는 정도이다. 대신, 의약품, 치과, 안과 진료 시에는 본인부담금이 있는데, 이는 영국의 1948년 NHS가 시작될 때 부터 시행되었던 것이다. 의약품에 대한 본인부담은 조제건당 약 6파운드(한화 약 1만1000원)으로 높은 수준이지만, 16세 미만의 어린이, 노인, 저소득층, 주요 만성질환자에 대해서는 본인부담이 면제이다.



독일은 많은 공적의료보험조합(질병금고)으로 이루어진 사회보험제도를 근간으로 하면서, 고소득계층에 대해서는 민간의료보험의 가입을 허용하고 있는 국가로, 보험료가 주된 재원이다. 공적의료보험 가입자의 외래 치료비 본인부담금은 분기당 10유로(한화 약 1만3000원)인데, 2004년 이전에는 완전 무료였다가, 2004년부터 의료비 지출 억제를 위한 개혁의 방안으로 본인부담을 적용하였다.



병원 입원 치료비는 입원 1일당 10유로만 부담하면 된다. 게다가, 공적의료보험 가입자 중에서 연간 총가구소득의 2% 이상 또는 중증질환으로 연간 총가구소득의 1%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하는 경우에는 본인부담이 면제이다. 본인부담 면제 외에 의료비 본인부담 지출이 연간 600유로(약 78만원) 이상이거나 정해진 연간 가구소득의 일정 비율을 초과했을 시에는 세금을 경감 받는다.



20세 미만에게는 치과서비스 무료



스웨덴은 지방의회를 중심으로 한 지방분권형의 국영의료서비스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로 영국과 마찬가지로 조세가 주된 재원이다. 특히, 스웨덴은 매우 강력한 본인부담 상한제(환자가 내는 총 치료비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는 제도)를 적용하는 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1년 동안 환자가 부담하는 총 의료비의 상한선은 지역별로 약간 차이는 있는데, 외래 치료비는 연간 100-170크로나(한화로 약 1만4000-2만1500원), 병원 전문의와 상담을 할 때에는 연간 200-300크로나를 넘지 않는다. 병원의 입원 치료비는 일반적으로 하루 80크로나(한화 약 1만1500원)만 내면 된다. 물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연금 생활자나 저소득층은 별도로 본인부담을 경감 받으며, 20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은 지역에 따라 본인부담이 완전히 없거나 매우 적다.



치과서비스도 20세 미만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완전 무료이다. 환자가 부담하는 약제비 본인부담의 연간 상한 금액은 1800크로나(한화 약 25만7000원)이다. 이렇듯 스웨덴의 강력한 본인부담 상한제 때문에 스웨덴 국민들의 민간의료보험 가입율은 2.3%에 불과하여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좀 더 구조적 원인을 찾아보기 위해 2007년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보건통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국내총생산 대비 국민의료비 지출이 영국 8.3%, 스웨덴 9.1%, 독일 10.7%로 한국의 6%에 비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의료비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유럽 복지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수준이 낮다고 단순 비교하기는 곤란하다. 왜냐면, 국민소득의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민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의료비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 국민소득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의료비 증가 속도는 OECD 최상위 그룹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증가 속도가 OECD 국가들 중에서 최상위 그룹에 해당하며, 현재의 증가 추세대로라면 조만간에 이들 국가 수준을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무작정 낮은 의료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높은 본인부담을 그대로 유지한 채 높은 국민의료비 지출 구조로 가도록 방치하는 것은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영국의 국민의료비가 1997년 노동당 정부 이전에는 6%대를 유지하였다가 노동당 정부 이후인 2000년 7.5%, 2005년 8.3%로 급증한 이유는 보수당 정부에서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었던 건강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질병예방 및 일차의료 서비스를 강화하고, 국민들의 불만이 높았던 병원서비스의 질 개선 및 입원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병원 투자를 확대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민의료비가 증가하더라도 중요하지만 간과되어 왔던 부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국민들이 만족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이들 세 국가의 국민의료비 지출 구조의 가장 큰 특징은 가계지출(본인부담)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에 비해 매우 낮지만, 대신 공공부문 지출은 매우 높다는 점이다. 즉, 개인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대신 사회적 부담을 늘림으로써 국민들의 의료보장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향후 '병원비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사항은 본인부담이 이처럼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이용량은 한국에 비해 훨씬 적다는 것이다. 이는 환자가 내는 본인부담이 낮아지면, 의료이용량이 급증하여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될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의 주장을 일축하는 것이다.



이들 국가들에서는 국민 개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는 획기적으로 낮아지더라도, 국민들이 적절한 의료이용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 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총액계약제 등의 의료수가제도의 도입과 주치의 제도 도입 등 일차의료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의료는 사고파는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이들 세 국가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의료보장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건강과 의료는 사고 파는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그 나라의 국민들이라면 누구나가 평등하게 누려야 하는 권리라는 철학이 제도에 강력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혹자들은 의료의 공공성이 강한 유럽 복지국가들에서도 최근 의료개혁에서 시장 논리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시장 논리가 우리나라처럼 의료제도의 근간을 훼손하는 방식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독일에서는 완전 무료이었던 외래서비스에 본인부담을 부과하였지만, 분기당 1만3000원 정도로 국민소득에 비해서는 매우 약한 수준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즉, 시장적 의료개혁이 일부 도입되긴 하였으나, 여전히 의료는 개인의 책임보다는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기본적 철학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 의료에 대한 기본 철학이 바뀌어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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