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메르스 극복 국민연대준비위원회
정부는 진정한 메르스 종식을 위해
전국민 대토론회 개최하고 보건의료개혁특위를 즉각 구성하라
오늘(8월 18일)로 첫 번째 메르스 확진환자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입국한 지(5월 11일) 100일이 지났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 기능인 국가방역망이 뚫린 데서 비롯되었다. 국민들은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허술한 국가방역체계와 감염병에 취약한 보건의료체계를 확실하게 뜯어 고치지 않으면 이번과 같은 공중보건위기상황를 초래하는 재난사태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도 메르스 사태을 재발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감염병관리와 보건의료체계 개편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또한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정부의 방역실패로 서른 여섯분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고, 약 1만 6천명의 국민들이 자가격리를 당했다. 환자와 그 가족들은 사회적 낙인과 외상 후 증후군으로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환자와 격리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위한 보상 및 지원 방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28일 메르스 사태의 ‘사실상 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과 환자와 격리자, 그 가족에 대한 보상과 지원책 없이는 메르스 사태는 진정으로 종식될 수 없다. 메르스 사태의 ‘진정한 종식’을 위해서는 정부는 다음 사항을 즉각 이행해야 한다.
첫째, 정부는 메르스 사태로 인한 국민의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방역 대책을 포함한 구체적인 보건의료체계 개편 방안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의 중요한 원인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가 감염병에 구조적으로 취약했던 데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 취약점을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으면 메르스 사태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감염병을 조기 발견하고 확산을 방지하는 방역체계를 강화하고, 감염병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과 격리병상을 확보하고, 응급실 과밀화, 가족에 의한 간병, 다인실과 같이 감염에 취약한 병원의 진료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메르스 사태 발생 100일이 지난 오늘까지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간 국회와 시민단체, 학계, 의료계에서 수많은 토론회를 통해 포괄적인 대책이 제시되었음에 불구하고 말이다. 오늘 보건복지부가 주최하는 공청회에서도 정부 당국자는 주제 발표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문가 뒤에 숨어서 정부가 여론을 떠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다. 늑장대처로 메르스 사태를 키운 정부가 후속대책을 마련하는 일도 늑장을 부리고 있다. 국민이 메르스 사태를 잊어버리기를 기다리면서 아예 외양간조차도 고칠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도 든다.
둘째, 정부는 메르스 환자와 격리자, 그들의 가족이 겪었던 그리고 현재 겪고 있는 고통과 피해에 대해 실태를 파악하고 지원 및 보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메르스 사태로 인해 무려 1만 6천명 이상의 국민이 격리되었고, 186명의 환자가 사투를 벌여야 했고, 그 중 36명의 국민이 사망했다. 사망 환자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도 제대로 된 장례식도 치루지 못했다. 많은 환자들이 국가 방역실패와 병원 감염관리실패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메르스 환자’ 또는 ‘슈퍼전파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무고한 환자들과 억울한 유가족들이 불면증과 분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메르스 사태로 인해 국민이 겪었던 그리고 겪고 있는 고통은 외면하고 있다. 사망 환자와 생존 환자, 격리자와 그 가족의 고통에 대한 체계적인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들이 겪은 고통에 대한 보상이나 지금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지원대책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대책 마련되어 있지 않다.
셋째, 정부는 메르스 사태를 극복하는 데 기여한 국민과 의료인, 공무원에 대해 사회적으로 그 공로를 인정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메르스와 싸움에서 자기 임무에 묵묵히 수행한 많은 의료진들과 일선 공무원들의 희생과 봉사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일부 의료진은 하루 2-3시간밖에 자지 못했고 하루 12시간씩 격리병동서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보건소 요원, 119 구급대원, 그리고 지자체 공무원 등 많은 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와 격리자 관리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우리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이들 모두가 보여준 노력과 기여는 위로받고, 지지 받아야 한다.
넷째, 대통령 직속의 보건의료개혁특위를 즉각 구성하여, 보건의료개혁을 위한 중장기 종합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메르스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방역체계와 병원 감염관리체계를 포함한 보건의료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이같은 포괄적인 개혁은 최고 정책결정자의 의지를 담은 체계적인 중장기 계획 없이는 추진될 수 없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의 보건의료개혁특위를 구성하기 위한 보건의료단체, 환자단체, 소비자시민단체, 그리고 정치권 모두가 참여하는 대국민 토론회의 장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다섯째,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메르스 사태 백서위원회’를 구성하여 메르스 사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메르스 사태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정확한 평가에 근거한 구체적인 처방이 이뤄져야 한다. 평가가 정확하지 않으면 처방도 졸속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메르스 백서를 만드는 일은 후속 대책의 출발점이자 핵심이다. 미국은 카트리나 사태 이후 1년 반에 걸쳐 약 600쪽에 가까운 백서를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9차례 공청회를 열었고 50만 쪽 이상의 서류를 검토했다. 다른 나라의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고위공무원을 단장으로 하는 ‘메르스 후속조치 추진단’에서 메르스 백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보건복지부 2015-08-12 보도자료. 메르스 백서작성을 위한 민관합동 자문회의 개최). 옛말에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했다. 초기방역실패와 비밀주의 때문에 엄청난 비판의 대상이 된 보건복지부가 백서를 통해 자기 잘못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을 지 의구심이 든다. 정부는 정부의 잘못을 덮기 위한 요식 행위로 백서를 만들려고 한다는 의심과 비판을 자초하지 말고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메르스 사태 백서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 위원회에 백서 편찬에 대한 전권을 부여해야 한다. 이것이 정부가 해야 할 올바른 일이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공감하여 20여 소비자시민단체, 환자단체, 보건의료노조, 그리고 보건의료인단체가 모여 결성한 ‘메르스극복 국민연대(준비위)’에서는 정부당국이 위의 요구사항을 조속한 시일내 즉각 이행할 것을 강력 촉구하는 바이다. 이미 수 차례 대책방안을 개진한 전문학회만의 의견을 재론하는 요식적인 공청회가 아니고, 각계 각층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국민 대토론회를 개최하여 진정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보건의료개혁 대책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메르스 사태로 초래된 국가적 재난사태를 진정 극복하고,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는 정부가 그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길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2015. 8. 18.
메르스 극복 국민연대 준비위원회
참여단체 (가나다순)
소비자단체 : 녹색소비자연대, 소비자교육중앙회, 소비자시민모임, 한국부인회, 한국소비생활연구원, 한국소비자연맹,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시민단체 : 건강복지공동회의, 건강세상네트워크, 서울YWCA
환자단체 : 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GIST환우회
노동계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학계・의료계 : 대한보건협회,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의협-의학회 공동 메르스 대책위원회,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한국환경건강연구소